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발해가 정말 고구려의 후계국이었는지,
그리고 그에 얽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야사)**을 살펴보려 해요.
교과서에는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라고 나오지만,
그게 정말 다일까요?
그 안에는 복잡한 정치, 민족, 외교, 정체성이 숨겨져 있었답니다.
발해는 어떤 나라였을까?
발해는 698년,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후에 세워진 나라예요.
건국자는 대조영이라는 인물이고, 수도는 동모산이에요.
땅은 엄청나게 넓어서,
지금의 함경도, 연해주, 만주, 중국 동북부 일부까지 포함됐어요.
그리고 중국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동쪽 바다의 번성한 나라”라고 부를 정도였어요.
그럼 도대체 발해는 왜 고구려 계승국이라고 불릴까요?
야사 1: 대조영은 고구려 장군의 아들이었다?
정사에는 대조영의 출신이 분명히 나와 있지 않아요.
그런데 <삼국사기>나 <구당서> 같은 옛 기록엔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 출신”이라고만 나와 있어요.
그런데 야사에서는 이렇게 말해요:
“대조영은 고구려의 장군이자 귀족인 ‘대중상’의 아들이었으며,
부친이 당나라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자, 아들이 그 복수를 위해 나라를 세운 것이다.”
심지어 어떤 전설에는 대조영이 을지문덕의 손자라는 말도 있어요!
물론 이는 정사에 없는 이야기지만,
고구려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인식은 분명 있었던 셈이죠.
야사 2: 발해의 국호에 숨겨진 고구려 코드?
발해라는 이름은 바다 해(海) 자를 써요.
그런데 초기 발해는 진국(震國) 또는 진나라라고 불렸어요.
야사에서는 이런 말이 있어요:
“진국은 고구려의 별칭 중 하나였고,
발해 사람들은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손’이라 부르며 당나라의 감시를 피해 진(震)이라는 이름을 썼다.”
이야기 속에서는
대조영이 수도를 세우며 “고구려는 쓰러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진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후대에 와서야 “바다와 맞닿은 제국”이라는 뜻으로 발해라 했다는 전승이 있어요.
야사 3: 발해 왕들은 고구려 왕릉을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
이건 정사엔 나오지 않는 이야기예요.
일부 야사에서는 발해 왕실이 몰래 고구려 왕릉(특히 광개토대왕릉)을 찾아가 제사를 지냈다고 해요.
특히 발해 3대 문왕 시절,
왕이 직접 신하 몇 명과 함께 고구려 무덤이 있던 압록강 근처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은밀하게 제를 올렸다는 설이 전해져요.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잊힌 나라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걸 스스로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야기지만, 발해가 얼마나 고구려에 대한 자부심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예요.
야사 4: 발해에는 고구려 언어가 그대로 쓰였다?
우리가 고구려 말을 직접 들을 순 없지만,
발해에서 사용된 일부 지명, 인명, 관직 이름을 보면
고구려와 매우 비슷해요.
야사에서는 발해 궁중에서는 고구려식 말을 따로 사용했다는 설도 있어요.
특히 조상제사 때는 꼭 고구려식 말과 예법으로 진행했다고도 하죠.
또한 발해 귀족 사이에는
“내 이름은 고구려의 법으로 지은 것이다”라고 자랑하던 풍습도 있었다고 해요.
야사 5: 발해 사람들은 고구려 유민을 특별히 대우했다?
일부 전승에서는
고구려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발해 조정이 특별히 관리하고,
“고려부족”이라는 별도의 명단으로 정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발해의 정신적 뿌리이자, 왕조의 정통성을 유지시켜 줄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이런 내용은 <발해고>, <동사강목> 같은 후대 문헌들에 간접적으로 남아 있어요.
야사 6: 발해는 신라보다 고구려를 더 닮고 싶어 했다?
발해는 같은 시기 신라와 여러 차례 접촉했어요.
하지만 신라와는 사이가 썩 좋지 않았어요.
야사에는 이런 대사가 전해져요:
“신라는 남쪽의 새로운 나라요,
우리는 북쪽의 옛 제국 고구려의 후손이다.”
이 말은 발해가 자신들을 고구려의 후예로 생각하고,
신라와는 다르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발해는 고구려 왕실 제도, 군사 전략, 귀족 중심 정치를 그대로 이어갔어요.
마무리하며
발해는 단순히 고구려 땅에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어요.
그 속에는 고구려의 기억, 정신, 이름, 제도, 문화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었어요.
물론 모든 게 고구려의 복사판은 아니었지만,
발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우리는 사라진 나라의 후손이다”라는 자긍심이 살아 있었어요.
역사는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일이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