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으면 백성도, 나라도 없다.”
– 세종 23년 여름, 한양에서
1441년, 지금으로부터 580여 년 전의 여름.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은 유독 메말라 있었습니다.
한양 도성 안팎,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고, 백성들은 물을 찾아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바로 세종 23년, 한반도를 덮친 여름 가뭄의 해입니다.
🌞 가뭄 앞에서 왕은 무엇을 했을까?
그 당시 왕, 세종은 궁중의 연회를 전면 중단하고, 관료들에게 절제와 검소를 명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종은 각 지방 수령들에게 직접 ‘우물의 상태’를 조사하게 하고, **“우물을 정비하라”는 명령(정비령)**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이 깊고 맑게 내려오도록 하고, 덮개를 씌워 먼지를 막아야 하며, 사람과 짐승이 쉽게 쓰게 하라.”
이는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살피는 마음이 담긴 실용 행정의 결정체였습니다.
🛠️ 우물 하나에도 민심이 있었다
당시의 우물은 단지 물을 얻는 공간이 아니라, 이웃과 마주하는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깨끗한 물은 곧 생명과 질병 예방, 나아가 사회 질서 유지로도 연결됐습니다.
세종의 우물 정비령은 단지 흉년을 버티기 위한 대책이 아니라,
공공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거시적 안목에서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 지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오늘날에도 여름이면 가뭄과 수해, 폭염 등의 기후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세종의 정비령처럼 백성(시민)의 불편을 먼저 살피고,
기초 인프라(물, 전기, 쉼터 등)에 대한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기록 속 세종의 말씀
“물이 없으면 백성은 살 수 없으니, 내가 먼저 삼가며, 신하들도 마땅히 민심을 살펴야 할 것이다.”
– 『세종실록』 세종 23년 6월조
📌 요약 한 줄
세종의 여름 행정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생활 정치’였다.
📚 참고 자료
- 『세종실록』 세종 23년 6월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DB
- 『조선의 물과 삶』, 박석무 저
- 문화재청 『조선의 우물 구조와 수리 방식』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