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설계한 머리, 정도전과 조선경국전의 비밀 이야기
조선을 세운 사람으로 이성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 머릿속에서 먼저 그려본 사람은 따로 있었어요. 바로 정도전이라는 인물이에요. 그는 왕이 아닌 신하였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을 만든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은 그가 만든 책 ‘조선경국전’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볼게요.
1. 책상에서 나라를 세운 남자
이성계가 칼로 나라를 세웠다면, 정도전은 붓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이었어요. 그는 조선경국전이라는 책을 써서 조선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 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백성을 위한 정치는 무엇인지를 정리했어요. 그런데 이 책은 그냥 글 모음이 아니라, 실제로 나라의 설계도 같은 책이었답니다.
어떤 야사에는 이 책이 만들어지던 밤, 정도전이 촛불도 없이 달빛 아래에서 써 내려갔다는 전설도 있어요. 글씨가 흐릿하지만 너무나도 강한 뜻이 담겨 있어 보는 이들이 모두 감탄했다고 해요.
2. 조선경국전은 금서가 될 뻔했다
조선경국전은 원래 공개적인 책이 아니었어요. 나라를 세우기 전에 몰래 작성되었고, 임금에게 직접 보여주는 비밀 문서처럼 여겨졌어요. 그런데 어떤 신하가 실수로 그 초고를 외부에 흘리는 바람에, 고려 조정의 관리들이 이 책을 발견하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해요.
“이건 반역이다!”라며 정도전을 잡아들이려 했지만, 이미 조선 개국이 시작되던 시점이라 결국 묻혔다고 해요. 그래서 조선경국전은 조선 초기에 잠시 금서처럼 취급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3. 글자 속에 숨은 뜻
정도전은 글을 쓸 때 한 글자 한 글자에 특별한 의미를 담는 사람으로 유명했어요. 조선경국전에 나오는 단어들 중 일부는 겉보기엔 평범한 말처럼 보여도, 조선의 미래를 암시하는 뜻이 담겼다고 해요.
예를 들어 ‘백성’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반복하고, ‘신하’보다 앞에 놓은 구조로 문장을 쓰는 경우가 많았대요. 이것은 왕보다 백성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담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4. 조선경국전 초고의 종이는 비단이었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의 초고를 썼을 때, 그 종이가 일반 종이가 아니라 비단이었다는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어요. 왜 비단이었을까요?
당시 정도전은 “이 글은 천 년을 가야 한다”며 튼튼하고 귀한 재료로 쓰고 싶어 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는 직접 평양의 비단 장인에게 부탁해 얇고 질긴 비단 종이를 만들어 받았고, 거기에 붓으로 한 자씩 써 내려갔다고 해요.
5. 왕과 신하가 아닌 ‘친구 같은 나라’를 꿈꾸다
정도전은 왕을 하늘처럼 받드는 나라가 아닌, 왕과 신하가 서로 존중하고,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원했어요. 그래서 조선경국전의 내용에는 왕이 혼자 모든 걸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신하들과 회의해서 결정하라는 내용이 많아요.
이런 생각은 당시엔 아주 파격적이었어요.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에, 정도전은 ‘함께 다스리는 나라’를 꿈꿨던 거예요.
6. 어린 세자도 조선경국전을 읽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조선 태종의 아들인 세종이 어릴 적, 글을 배울 때 조선경국전을 읽었다고 해요. 보통은 한자나 역사책을 먼저 배우는데, 세종은 정도전의 책을 먼저 펼쳤다고 전해져요.
그 이유는 세종이 어려서부터 “나라를 다스리려면 나라를 만든 생각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조선경국전은 단지 법령서가 아니라, 후대 임금들에게 길잡이 같은 책이 되었어요.
7. 정도전과 비밀 편지
정도전은 이성계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그들 사이에는 비밀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전설이 있어요. 이 편지에는 서로의 정치적 생각, 왕이 된 뒤의 계획 등이 적혀 있었고, 모두 암호로 쓰였다고 해요.
편지를 열면 글자가 뒤죽박죽이라 아무도 못 읽는데, 촛불을 비추면 숨겨진 글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 편지를 보관한 사람은 정도전의 친구이자 시골에서 술을 팔던 조용한 학자였다고 해요.
8. 조선경국전에는 여성을 위한 조항도 있었다
놀랍게도 조선경국전에는 여성과 관련된 정책 제안도 포함돼 있었어요. 당시 대부분의 문서가 남성 중심이었지만, 정도전은 “한 가정의 평안은 아내에게 달려 있다”며 여성 교육과 복지에 대한 제안을 포함시켰어요.
그 중 하나는 “지방마다 여성 교육을 위한 공간을 두자”는 내용이었는데, 이는 후에 궁중 여성 교육기관 ‘내명부 제도’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줬다고도 해요.
9.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쓸 때 들은 음악
정도전은 글을 쓸 때 꼭 음악을 틀어놓았다고 해요. 당시 음악이라고 해봐야 거문고나 피리 소리였는데, 그는 특히 ‘정석가’라는 슬픈 곡을 좋아했대요.
이 곡은 고구려가 망하던 때 불렸던 노래인데, 조선이라는 새 나라를 만들며 옛 나라들의 교훈을 되새기려는 뜻에서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조선경국전엔 ‘슬픔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라는 감정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있어요.
10. 정도전의 마지막 바람
정도전은 후에 정치적인 갈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어요. 하지만 그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조선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어요. “나는 왕을 위해 일한 것이 아니다. 백성을 위해 글을 썼다.”
이 말은 이후 많은 선비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그가 남긴 조선경국전은 조선 500년을 지탱한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