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4) 썸네일형 리스트형 조선의 대학자 이이, 율곡의 숨겨진 이야기 1. 청년 시절, ‘천재 소년’의 등장 이이는 1536년 강릉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7세에 이미 사서삼경을 술술 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율곡’이라 불렀는데, 강릉 오죽헌 근처의 율곡리에서 유래한 호였습니다. 그러나 이이의 어린 시절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아이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당에서만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어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산속에서 사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세상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2. 어머니 신사임당의 교육 이이의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어머니 신사임당입니다. 그녀는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자연과 예술을 통해 인품을 기르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루는 신사임당이 이이에게 ‘매화를 그려보.. 왕의 붓과 검 – 조선 정조의 숨겨진 이야기 1. 젊은 왕의 탄생 정조, 이름만 들어도 품격이 느껴지는 조선의 22대 왕. 그러나 그의 즉위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했고, 그 그림자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궁궐의 복도에서 스치는 시선 하나, 수라상에 놓인 음식 하나에도 정치적 뜻이 담겨 있었던 시절, 정조는 어려서부터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 했습니다. 그의 즉위는 단순히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 자신을 둘러싼 정치 세력을 통제하는 싸움의 시작이었습니다. 2. 비밀 조직, 장용영의 탄생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자신의 친위 부대 ‘장용영’을 창설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왕을 호위하고 수도를 지키는 .. 조선의 지식 거인, 정약용 – 실학과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 1. 어린 시절과 특별한 교육 정약용은 1762년 남양주 마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다는 평을 들었고, 집안은 비교적 유복했기에 그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유교 경전만 파고든 것이 아니라, 농사, 공예, 의학까지 손에 닿는 대로 탐구했습니다.그의 학문은 책상 위의 이론이 아니라, 세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짓는 법을 이야기하면 귀담아듣고, 직접 논두렁을 걸으며 관찰하던 습관이 나중에 실학자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 정치 무대에서의 부상 정약용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그는 영특했지만, 동시에 직언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정치 세계에서 쉽게 친구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달랐습니다.정조는 .. 김밥, 바다와 밥이 만난 이야기 – 조선시대부터 오늘까지 1. 김밥의 시작, 조선의 밥말이 김밥은 오늘날 한국인의 소울푸드 중 하나로, 소풍, 도시락, 야식 어디서든 등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형태의 김밥은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김밥과 비슷한 음식이 있었는데, ‘김(海苔)으로 밥을 말아먹는’ 풍습이 그것입니다. 당시 한양과 해안가를 중심으로 김 생산이 활발했는데, 주로 겨울철에 수확한 김을 불에 구워 밥과 곁들였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속재료가 다양한 것은 아니고, 소금 간한 밥에 참기름을 발라 김에 싸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를 ‘김말이’ 또는 ‘김과 밥’이라 불렀습니다. 2. 일제강점기, 김밥의 변신 김밥이 본격적으로 ‘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무렵입니다. 일본의 ‘노리마키 초밥’가 들어오면서 조.. 김치, 천년의 발효 비밀과 숨겨진 역사 이야기 1. 김치의 시작, 단순한 절임채소가 아니었다 김치의 역사는 단순히 ‘채소를 절인 음식’의 탄생이 아닙니다. 삼국시대 기록에도 ‘침채(沈菜)’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채소를 소금물에 담가 저장한 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춧가루와 마늘이 가득한 김치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김치는 소금에 절인 무와 배추, 그리고 약간의 젓갈 향만을 입힌 소박한 저장식품이었습니다. 특히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김치는 겨울 저장 식품 중 가장 귀하게 취급됐습니다. 당시 냉장고가 없던 시절, 김치는 발효라는 과학적 원리를 자연스럽게 이용한 생활의 지혜였죠. 2. 조선의 김치, 그리고 고추의 등장 조선 전기까지 김치에는 고추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는데, 17세기.. 목욕탕, 뜨거운 물 속에 숨은 역사 이야기 1. 조선의 목욕, 깨끗함보다 의식이었다 우리가 아는 현대식 목욕탕은 청결과 휴식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목욕은 지금과 달랐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양반들은 매일 목욕하는 습관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물을 데우는 것이 귀찮고 나무 연료가 비쌌기 때문에, 목욕은 중요한 날이나 의례 전후에 하는 특별한 행위였습니다. 특히 관직에 오르거나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반드시 목욕을 했는데, 이는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의미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2. 왕실 전용 목욕탕, ‘탕청’의 비밀 궁궐 안에는 왕과 왕비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목욕시설이 있었습니다. ‘탕청(湯廳)’이라 불리는 이곳은 뜨거운 물이 끓이지 않았고, 향초와 약초를 넣어 물을 달였습니다. .. 조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사라진 발명가의 비밀 1. 노비 출신, 하늘의 별을 꿈꾸다 장영실의 출신은 놀랍습니다. 그는 노비였습니다.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가 천민이었기 때문에, 장영실은 태어날 때부터 노비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노비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기계에 대한 유별난 관심을 보였고, 망가진 물건을 보면 몇 번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고쳐냈다고 합니다. 야사에 따르면 어느 날 장영실이 쌀을 담는 곡식 저울을 고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지나가던 세종대왕이 봤고, 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장영실은 궁으로 불려가 ‘기술 노비’로 활동하게 됩니다. 2. 세종이 아낀 유일한 사람 세종은 장영실을 단순히 기술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영실을 ‘형제처럼 아낀다’고 표현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들 1. 안중근, 사람으로 태어나 의사가 되기까지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양반 집안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정의감이 강했던 그는 한학을 배우며 인격을 수양했고,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나라가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교사로도 일했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여 세례명 토마스를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그는 가난한 이웃을 돕고, 술과 담배를 멀리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러일전쟁 이후 조선의 운명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무장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 시기의 안중근은 단순한 청년이 아닌, ‘준비된 독립운동가’로서 자신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25 다음